저자: 프랑수아즈 사강
줄거리: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만 살아온 17세의 소녀 세실이 코트다쥐르의 별장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겪는 일들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작품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후에 두 번째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은 지는 꽤 됐지만 스토리가 재밌었고 심리 묘사를 참 잘한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슬픔이여 안녕>은 최근 인도여행에 갈 때 비행기나 기차에서 읽으려고 빌렸던 책인데 읽을 시간이 없어서 인도에서는 거의 읽지 못했고 한국에 돌아와서야 제대로 읽게 되었다.
프랑수아즈 사강. 책을 조금 아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슬픔이여 안녕>은 사강이 18살에 쓴 첫 번째 책으로 그녀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여름휴가 중 보트를 타다가 다친 사강이 병상에 누워 심심풀이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 자체가 그렇게 무겁지 않게 술술 읽히는 편이다.
세실과 세실의 아버지 레몽은 자유롭고 방탕한 생활을 한다. 반면에 레몽과 결혼을 약속한 안은 고상하고 지적인 아름다운 여성이다. 서로가 다른 점들에 끌린 안과 레몽은 여름휴가를 끝낸 뒤, 파리로 돌아가 결혼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남은 여름휴가를 레몽, 세실, 안 은 함께 보내고 그 시간 속에서 서로의 감정과 욕망이 교차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세련되고 지적이고 신중한 안은 레몽과 세실의 자유로우며 방탕하고 경박한 레몽과 세실을 고치려고 한다. 세실의 남자친구 시릴을 못마땅하게 여겨 만나지 못하게 하고 공부를 강요하고 그녀의 말버릇을 고치려고 한다. 여기서 이런 것들에 대한 부질없음을 나타내는 문구가 있다.
고쳐주려는 의무감을 갖지않으면 타인의 결점에 적응 할 수 있다. -103p
이 문장의 유용함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가까운 관계에서의 갈등은 대부분 타인을 나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타인을 고치려고 하면서 나타난다. 타인을 내 기준에 맞춰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는 그, 나는 나라는 식의 생각을 가진다면 인간관계는 훨씬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럴 수 없는 이유도 있는 게, 우선 안의 성향자체도 지적이며 신중한 편이었고, 또 레몽과 결혼하게 되면 세실은 그녀가 책임져야 하는 그녀의 자식이었으므로 그는 세실의 그런 경박함을 더 참을 수 없었고 고치려고 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실은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걸 참지 못했고 안과 아버지를 떼어놓을
잔인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몇 년 전에 한참 프랑스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프랑스에 관한 책을 읽고 프랑스어를 배웠던 적이 있었다. 그때 프랑스 문화가 나에게 그토록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현재에 집중하는 삶의 태도'들이 새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상 자신의 욕망이나 욕구를 자제하고 타인을 위해 혹은 미래를 위해 지금의 자신을 희생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나보다는 타인을, 현재보다는 미래를 중요시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프랑스의 전반적인 문화는 현재의 내가 하고 싶은 것, 생각하는 것 , 느끼는 것에 집중한다. 현재 감각을 자극하는 향수, 음식, 패션이 유명한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세실과 세실의 아버지 레몽은 지극히 프랑스적이다.
‘이 감정, 그러니까 안에 대한 이 감정은 어리석고 한심해. 마찬가지로 그녀와 아버지를 떼어놓고싶다는 이 욕망은 잔인해.’ 하지만 어쨌든 왜 나 자신을 그렇게 비판해야 하지? 나는 그냥 나야. 그러니 사태를 내 마음대로 느낄 자유가 있는 게 아닐까?’ -69p
이소설의 이름이자 소설 맨 마지막에 나오는 문구인 ‘슬픔이여 안녕’은 슬픔을 떠나보낸다는게 아니라 슬픔을 받아들인다는것을 의미한다. 원하는 것을 하며 생각없이 삶을 즐거운 것으로만 채웠던 세실이 안을 만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슬픔을 처음 느끼고 그것을 받아 들이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이 소설은 우리가 모두 한번씩 겪었을, 슬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관한 성장소설이다.
이상으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리뷰였다.고전소설이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고전소설에서 바라는 것들, 즉 교훈적이고 숨겨진 의미가 있는 그런 전형적인 소설은 개인적으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직관적이고 사람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잘되어있고 재밌게 술술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인 책 이었다. 프랑스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프랑수아즈 사강의 대표작 <슬픔이여 안녕>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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