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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리뷰(오스카 와일드) - 영원한 젊음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책 주관적인 리뷰

by 차미박 2024. 10. 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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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정말로 증오하는 사람을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게 죽일 수 있다면 나는 살인을 할 것 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적이 있다. 나의 대답은 NO. 내가 양심적이고 순전무결해서 그런게 아니라, 세상은 모르더라도 내 자신은 그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내 영혼의 방 한구석이 피폐하게 버려질걸 알기에, 그것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거라는것을 알기에 NO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양심의 가책을 나 대신다른 어떤 물건이 대신 책임져줄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는 주인공 도리언이 아무리 악행을 저지르더라도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그의 내면의 추악함은 화가 홀워드가 그려운 초상화가 짊어진다. 실제 도리언은 영원히 아름다움을 유지하게 된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여러 버전의 번역본과 표지가 있는 듯한데 내가 본 책은 민음사에서 나온 쏜살에서 출판한 버전이었다. 이 책의 표지에는 한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초상화 화가인 '정중원'이라는 작가가 이 책을 읽고 도리언 그레이의 모습이 이랬을 거라고 추측하며 그린 표지라고 한다. 이 책의 앞쪽에는 이 초상화를 그린 화가의 추천의 말이 들어가 있는데, 표지에 쓰인 초상화는 실제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연인이었던 엘프리드 더글러스의 모습을 참고해서 그렸다고 한다. (참고로 오스카와일드는 남자였지만 남자를 사랑했다) 단지 소설뿐만 아니라 오스카와일드의 이야기, 소설의 이해를 도와주는 초상화의 그림,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이야기 등이 결합되어서 이 책이 훨씬 풍성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왼쪽: 앨프리드 더글러스 / 오른쪽: 오스카 와일드

 
 
나이가 들면 내면이 얼굴로 나온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젊었을때는 각자 나름대로 반짝이고 아름답지만, 나이가 들면 그런 순수한 아름다움은 빛을 잃는다. 하지만 젊었을때 부터 꾸준하게 선행을 하거나 바른 마음가짐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나이가 들면 그 나름대로의 내면의 빛이 밖으로 새어나와 외모를 밝혀준다.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은 얼굴에서 그 은은한 빛이 드러난다. 단지 생김새가 아니라 말투, 표정, 행동가짐이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건강한 나이듦이란 그렇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내 외모가 전혀 변하지 않는다면? 변하기는커녕 더 아름다워지고, 그 대신 자신의 초상화가 그 추악함을 다 담아낸다면? 순수했던 도리언은 점차 악해진다. 함께 하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현재의 쾌락에 머물고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만 살아간다. 그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죄는 그의 초상화가 모두 짊어진다. 그의 초상화는 점점 괴물같이 변해간다. 결국 그는 그 초상화를 없애기 위해 찌르는데 정작 자신이 겨눈 칼끝에 죽게 된 건 자기 자신이다.
 

자료를 찾다보니 2013년에 도리언 그레이라는 영화가 영국에서 나왔다. 우리가 익숙히 잘 아는 콜린퍼스가 헨리 경으로 출연한다.


 
이 소설속 헨리경 이라는 인물은 도리언 그레이의 인생을 180도로 바꿔놓을 만큼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처음에 화가 홀워드가 우려한것 처럼 헨리경은 도리언 그레이에게 독약같은 말들을 주입하고 그로 인해 변화하는 도리언 그레이의 모습을 보며 흥미를 느낀다. 우리 인생에서도 돌이켜보면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소설처럼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사람일 수도 있다. 대학교 만난 첫 사랑일 수도 있고, 아주 잠깐 여행지에서 스쳤던 사람일수도 있다. 그 당시에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때를 돌아보면 엄청난 영향이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인간은, 게다가 젊은 인간은 그런것들에 본인의 물성이 바뀔만큼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 
 
 



 
가장 처음 도리언이 사랑에 빠지는 시빌 베인이라는 여자가 있다. 그녀의 아름다운과 연기에 도리언은 반하게 된다. 하지만 도리언과 사람에 빠진 시빌은 더 이상 아름다운 연기를 할 수 없게 된다. 도리언을 만나기 전 그녀는 텅 빈 공간이었기에 어떤 연기도 할 수 있았다. 모든 배역을 담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도리언과 사랑에 빠지면서 그녀에 영혼에는 사랑의 경험으로 채워진 어떤 것이 채워졌고 더 이상 아름다운 연기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연기를 사랑했었던 도리언이 그녀의 연기를 영영히 망쳐버린 것이다. 도리언이 사랑했던 그녀의 아름다운 연기는 그를 만나 영영 사라지게 된 것이다. 도리언은 그녀를 떠나고, 시빌은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 경험으로 인해 도리언은 자신의 초상화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영화속에 나오는 시빌베인의 모습


최근에 고전소설을 많이 읽고 있다. 20대 초반에도 고전 소설을 읽으려고 '노력'했었지만, 사실 그땐 그냥 이해가 안되도 무작위로 읽어내려갔던것 뿐이었다. 왜 고전소설이 중요한지도 몰랐고 그 안에서 내가 뭘 얻어가야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서른이 지난 지금 고전소설을 읽는 자세와 다가오는 감정은 다르다. 아주 차가운 얼음이 맨 살에 닿이듯 강렬하다. 차이점 이라고 한다면, 10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순간들을 맞이하기도 했고,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을 경험하기도 했다. 모든 열정을 불태워보기도 했고, 모든것이 허무해져 무기력하게 보낸 시간도 있었다. 그렇다. 나는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감정을 느꼈다. 그렇기에 고전소설에서 인간에 감정, 고통, 기쁨을 묘사하는 부분들에서 내 감정을 그대로 글로 옮긴듯한 문장들에 몸이 떨리는 감동을 경험하기도 했다. 
 
도리언그레이의 초상은 나에게 그런 경험들에 불을 지펴준 듯이 강렬했던 소설이었으며 오스카와일드의 명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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