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쪽에는 스포 x, 중간 표시 이후부터는 스포 o
영화 <괴물>은 <어느 가족> <바다 마을 다이어리>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 등 한국에서도 꽤 잘 알려진 영화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2023년 신작이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러닝타임: 127분 (2시간 6분 34초)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각본: 사키모토 유지
음악: 사카모토 류이치
한국 개봉일: 2023년 11월 29일
상영등급: 12세 이상
줄거리
“우리 동네에는 괴물이 산다”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행동에서 이상 기운을 감지한다. 용기를 내 찾아간 학교에서 상담을 진행한 날 이후 선생님과 학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흐르기 시작하고. “괴물은 누구인가?” 한편 사오리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미나토의 친구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자신이 아는 아들의 모습과 사람들이 아는 아들의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데… 태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아무도 몰랐던 진실이 드러난다.
영화 <괴물>은 내가 처음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다. 그의 영화에 관심이 없다가 최근에 관심이 생긴 이유는 도서관에서 그의 에세이를 우연히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보다 책으로 먼저 만난 일본의 영화감독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 https://chamy.tistory.com/m/105
이 책을 보고 이 감독에게 관심이 생겼고 그의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때마침 그의 신작이 개봉해서 보게 되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참 앉아있었다. 오랜만에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서 항상 영화를 보면 ‘드디어 끝났다!’라는 기분이 들었는데(아무리 재밌더라도 2시간 이상 보면 늘 그런 기분이 든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박진감 넘치고 화려한 장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났을 때는 아쉬웠고 여운이 짙게 남았다.
내가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 중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책을 발견하고 집어든 그 순간의 나의 선택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이 영화는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3개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스토리가 진행된다. 처음에는 미나토의 엄마인 싱글맘 무기노 사오리(안도 사쿠라)의 시점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미나토의 담임선생님인 호리 미치토시(나가야마 에이타), 세 번째는 미나토(쿠로가야 소야) 시점이다.
--------아래부터는 스포 있음--------
한 사람눈으로 보면 평평하게 보이는 이야기가 두 사람, 세 사람의 시점이 합쳐지면 비로소 입체적으로 변한다. 오히려 한 사람의 시점이었을 땐 명확해 보이던 진실이 시점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모호 해고 혼란스러워진다.
우리 일상에서도 그렇다. 회사에선 폭정이고 화만 내는 부장님이 집에 가면 아내와 아이들을 끔찍이 아끼는 자상한 아버지라던지, 회사에서 존경받는 진중한 사장이 나가서는 룸살롱에서 음탕하게 노는 사람이었다던지,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를 손가락질했는데 일어나 보니 다리 한쪽이 없는 장애인이었다 던 지의 이야기를 우리는 일상에서 숱하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타인을 평면적으로 바라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본인을 한 면만 보고 판단하면 억울해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영화나 소설을 보며 사람을 다각도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평소에 좋은 영화와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영화와 소설은 타인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안경과도 같다.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 못한다를 판단하는 내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 배우가 ‘연기를 한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 배우는 연기를 잘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영화를 보면서 ’와 저 배우 연기 잘하네 ‘가 아니라 너무 그냥 그 자체라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게 하는, 그런 연기가 배역과 하나 된 정말 잘하는 연기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배우 들은 배역과 하나 된,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깊은 몰입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여기에 나오는 엄마역의 안도 사쿠라는 <어느 가족>에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이 영화를 보면 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녀를 좋아하는지, 선택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초반부터 많은 떡밥들이 나온다. 요즘 영화들을 보면 초반에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 많은 떡밥을 뿌려놓고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거나 엉성하게 회수해서 비난을 받는 경우들이 많다. 하지만 <괴물>에서는 많은 떡밥들을 풀고 그 떡밥들을 우아하게 회수한다. 내용의 구조상 ‘이 사람 시점에서 이렇게 보였던 게 저 사람 시점에서는 사실은 이런 의미였어 ‘라는 스토리를 풀면서 아무래도 그런 매개체 즉 떡밥들이 많았어야 했던 특징도 있었기에 많은 떡밥들을 따라가며 보는 재미도 있었다.
예를 들어 처음엔 엄마 시점에서는 선생님을 추궁하는 와중에 사탕을 먹는 게 기행 같고 무례해 보여 담임을 더 이상하게 보이게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나름대로의 긴장을 풀기 위해 먹었다던지, 초반에 미나토가 ‘몸은 사람인데 뇌가 돼지면 그건 무엇이냐’고 엄마에게 묻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알고 보면 미나토가 좋아하는 친구의 아빠가 그 친구를 학대하며 ‘너는 몸은 사람이지만 그 안에 돼지의 뇌가 들었다’라고 말한 것이었다던지, 담임이 룸살롱을 드나들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게 사실 아니었다던지.
아마도 그런 걸 통해서 작가는 진실이라는 건 없을지 모른다고, 그저 한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만 있을 뿐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음악감독은 올해 3월 별이 된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영화 사운드 트랙이다. 이 영화에서 음악이 튀는 부분은 없으나(내가 잘 못 들었을 수도 있지만) 맨 마지막에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나오는 음악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다.
자료를 찾다 보니 방탄소년단의 멤버 슈가의 솔로 앨범의 9번 트랙도 유작으로 남았다고 하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이 영화는 불편한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뿐인 아이가 학교에서 담임에게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느끼는 엄마의 분노, 오해와 각종 회유들로 진실을 숨기길 강요받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고 사회적으로 비난받게 되면서 한 번에 행복한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선생님, 혼란스러운 내면을 경험하고 그 사이에서 우정 또는 사랑을 처음 겪게 되는 미나토. 그런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고레에다 히로키즈는 아름다운 영상미로 담아낸다. 반어적인 구성이다. 그랬기에 모순적으로, 슬픔은 아름다워 보이고 아름다움은 더 슬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책을 먼저 읽고는 ‘왠지 이 사람의 영화를 좋아할 것 같아!!’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의 영화는 예상보다 훨씬 더 좋았고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당장 그의 다른 작품들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영화를 보면 더 입체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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