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니아인 남자친구가 최근에 존오브인터레스트와 퍼펙트 데이즈를 봤는데 둘 다 좋았고, 특히 퍼펙트 데이즈를 본 후기를 말해주는데 그 후기를 듣고 너무 보고 싶어 졌다.
근데 문제는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 서울은 모르겠지만 부산에 사는 사람으로서 일단 일반 영화관에서는 이제 상영을 하지 않았고 유일하게 남포동에 <모퉁이 극장>이라는 독립영화 상영하는 작은 영화관에서만 상영을 하고 있었다. 고민을 하다가 토요일 오후에 보러 가기로 했다.
영화는 굉장히 잔잔하다. 한 남자의 하루하루가 반복되어서 나오는 과정 중에 미묘하게 다른 이벤트들이 생기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때문에 극적인 장면은 거의 없는 편이다.
이 영화의 리뷰들을 보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주인공’이라는 표현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일상을 보며 그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자신의 일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고 또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 혹시 그런 일상을 살아본 사람들이 있다면 그게 얼마나 고되고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수 박진영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열심히 살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고, 바르게 살려면 또 에너지가 필요하다. 퍼펙트데이즈의 주인공은 남들은 몰라줄지라도 스스로의 일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해 나아가며, 자연을 해치지 않으려고 하며 주위사람들과 잘 지내고 바르게 살아간다. 그는 엄청나게 에너지가 필요한 일을 하고 있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주인공은 일하는 중간중간에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주로 그가 찍는 것은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모습이다. 쉬는 날이면 필름을 인화하고 인화한 사진들을 골라내서 실패한 건 찢어버리고 마음에 드는 사진만 골라 보관함에 넣어둔다.
몇 년 전에 나는 인생은 하나씩 사라져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모든 것이 허무해졌었다. 그 허무함의 늪에서 나오기 위한 방법이 주인공에게는 사진이었고, 과거의 나에게는 글이었다.
주인공이 같은자리에서 같은 햇살을 찍지만 그가 찍은 수백 개의 사진 중 똑같은 사진은 절대 없을 것이다. 겉으로 볼 땐 똑같아 보이지만 그날의 빛, 나뭇잎의 밀도, 흔들리는 정도는 모두 다르다. 우리의 일상도 그렇다. 다 똑같아 보이지만 하루하루 그 안을 채우는 사람, 사건, 이야기들은 모두 다르다. 다만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알아차리기 위해선 자기만의 의식이 필요하다.
영화 맨 끝에 코모레비라는 일본어가 나온다. 코모레비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라는 뜻이다.
나뭇잎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매일 다른 일상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었을까, 또는 치열한 삶에서 숨 쉴 곳이었을까, 혹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아낼 수 있게 해주는 선물이었을까.
영화 정보를 찾다가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이 나와 비슷한 생각과 감상을 가진 것 같아서 공감 가서 가지고 왔다.
이상 영화 퍼펙트 데이즈 리뷰였다. 엄청나게 재밌거나 인상적인 영화는 아니었지만 주인공을 맡은 야쿠쇼 코지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그리고 놀라운 게 일본의 감성이 잔뜩 묻어나는 이 영화를 찍은 게 빔 벤더스라는 독일국적의 외국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영화를 보고 뭐 일상을 소중히 여겨야겠다거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개인적으로 들진 않았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설 땐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의 일상을 깊이 들여다본 기분이었고 ‘아 저렇게도 살아가는구나’라는 담백한 인상을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한 사람의 인생에 발을 담가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인생이 못 견디게 지루할 때 그가 뜨는 해를 보며 카세트 테이프를 틀던 그 순간이 떠오를 것 같다.
Ps.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하는 주인공인만큼 좋은 올드팝들이 많이 나온다. 영화를 다 보거 난 후 퍼펙트 데이즈 ost를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https://youtu.be/YV1 a0 ZjeIVw? si=m7 fz5 vnaZ6 d4 Ml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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