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이야기 <심신단련-이슬아>
이슬아. 왠만큼 독립출판에 혹은 젊은 한국작가들에게 관심이 있다고 하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그녀는 몇년전부터 독립출판계에서 꽤 유명인사였고 애써 듣지 않아도 여기저기에서 그녀의 이름이 쉽게 들려왔다.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나는 내 또래 작가의 글을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나와 비슷한 시간을 살아온 그들의 글을 읽을 시간에 나보다 더 긴 시간을 살아온 사람의 글을 읽기를 택한다.(편협한 생각이겠지만) 물론 같은 시간을 살아내고도 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질투도 있는 것 같다.
여하튼 이런저런 이유들로 이슬아 작가의 책을 읽지 않다가 최근에 읽은 <시대예보>라는 송길영의 책에서 또 이슬아 작가의 이야기를 한번 더 접하게 되었다.
https://chamy.tistory.com/m/76
그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이슬아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기 시작했고, 그 무렵 영월 여행을 갔다가 방문한 독립서점에서 이슬아의 책들을 발견했다. 많은 책중 고민하다가 적당한 두께의 흥미로워 보이는 심신단련 이라는 책을 구매했다.
#솔직함 한도초과
이슬아 작가는 “최초로 등단을 거치지 않은 작가” “등단제도의 대안을 최초로 제시한 작가“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하다. 하지만 그녀는 이 책에서 이러한 타이틀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한다.
”어떤 네티즌들은 이슬아가 등단 제도를 향해 패기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혹은 문학계의 새로운 등용문을 창조하여 출판계에 한 방을 먹였다고도 말했다. 과연 그런가? 아니었다. 출판계는 내게 잘못한 게 없으므로 한방을 먹일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능력이 되면 등단을 하고 싶었다. (…) 한동안은 등단이 하고 싶어서 여러 출판사들을 돌며 소설 창작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분명 작가 타이틀을 따낸 건 자신이 노력한 일들에 대한 결과였고 그러한 결과에 대해 사람들이 내려주는 수식어에 어깨가 으쓱할 법 하지만 그녀는 솔직하게 자신이 등단을 하고 싶었지만 능력이 없어서 등단을 하지 못했고 고백한다. 이슬아의 글을 보면 솔직하다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이 글들은 이슬아의 솔직한 글이 아니라 그냥 이슬아 자체인 것 같이 느껴진다.
#매일 쓰는 글의 힘
몇달 전 매일 원고지 3매 분량의 글을 3주간 써야하는 리추얼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엄연히 말하면 주말을 제외한 5일간 이었지만 그때 매일 글을 쓰는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슬아 작가는 2018년부터 거의 매일 글을 써서 보내주는 일간 이슬아를 발행해왔다. (2023년 현재 기준으로는 휴재중이다.) 이 책에서는 일간 이슬아 연재중에 있었던 어려움, 고단함, 문제점 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무슨일이든 매일 꾸준히 해봤었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여하튼 내가 3주간 매일 글을 써보면서 느낀점은 매일 쓸수록 글은 조금씩 더 나아진다는점, 그리고 글을 쓴다는 건 확실히 내 주위를 선명하게 인식하고 더 좋은방향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 그럼에도 매일 글을 써낸다는것은 결코 쉬워지지 않고 때로는 더 어려워 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매일 글을 써내려간 이슬아 작가를 단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닌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녀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이야기
그녀의 책에는 다양한 주변인들이 나온다. 복희(이슬아의 어머님), 웅이(이슬아의 아버지), 하마, 양, 희 등등등. 그녀가 가족과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들을 보다보면 내 주위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도 내 주위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게한다. 그녀가 자신의 주변인들에 대해 말하는 문장중에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다.
나를 몹시 사랑하는 사람과 적당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의지하며 나는 자주 혼자가 된다. -268p
#아주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이야기
그녀의 글을 보면 아주 개인적이다. 개인의 경험, 감정, 생각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보편적이다.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그녀의 학창시절 기숙사 이야기에서는 잊고있었던 나의 학창시절의 감정이 떠오른다. 그녀가 주변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때 꼭 내 주위에 비슷한 어떤 사람도 떠오른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그런 힘이 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게 아닐까.
아래부터는 이 책에서 좋았던 문장들 모음이다.
우리는 적당히 서로의 언덕에 기대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70p
그래도 하마를 모르는 인생보다 아는 인생이 나는 좋다. 고생은 싫지만 고생이 바꿔놓은 하마의 모습은 싫어할 수 없다. 그가 불행이 바라는 모습으로 살지 않으려고 애쓴 것을 나는 안다. 스스로를 홀대하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낸 것도 안다. 요즘엔 책상에 앉아 일을 하는 하마의 뒷목에서 작은 긍지를 본다. 가까이 있는 사람만 알아 책 정도로 조용하지만 분명한 힘이다. -108p
인간은 불행의 디테일을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확히 불행해지는 존재 같았다. -151p
친절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얼굴을 서로 드러냈을 때 비로소 전개되는 우정의 영역에 말이다. -179p
외출 전에 입는 옷과 가방에 챙기는 것들은 결국 그 하루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염려이므로. -198p
멀리 가지 않고도 멀리 가는 법을 아는 자들이 있다. 여행 없이 여행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264p
나를 몹시 사랑하는 사람과 적당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의지하며 나는 자주 혼자가 된다.-268p
소중한 사랑과 우정을 진짜 내 삶으로 만들려면 꼭 혼자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건 이상하고도 가혹하고도 재미있는 진리다. -268p
사랑은 불행을 막지 못하지만 회복의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사랑은 마음에 탄력을 준다. 심신을 고무줄처럼 늘어나게도 하고 돌아오게도 한다. -109p
우리는 서로를 놓치고 나서도 서로에게서 배운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31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