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를 이해시키는 힘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알베르 카뮈는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작가였다. 자발적으로 생긴 관심이기보다는 워낙 많은 소설가나 작가들이 알베르 카뮈를 언급했고 그의 글을 예찬했었기 때문에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러는 걸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알베르 카뮈의 책 <결혼>과 <이방인>을 함께 구매했는데 결혼은 엄청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묘사가 너무나 많고 어렵다는 느낌이라 지금은 앞을 읽다가 막힌 상태고 이방인으로 먼저 넘어왔다.
# 묘사의 탁월함
그의 방을 나서, 나는 문을 닫고, 층계참의 어둠 속에 잠시 있었다. 건물은 조용했고, 층계 저 밑 깊은 곳으로부터 어둡고 습한 공기가 올라왔다. 나는 단지 귓전을 울리는 내 맥박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꼼짝 않고 서있었다. -54p
알제르 카뮈의 상황묘사는 나를 그 순간으로 데리고 가는 듯 한 느낌이 들정도로 정교하다.
# 번역의 한계
이 이방인의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소설의 가장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이정서 번역 참고)이다. 이 소설 전체를 꿰뚫고 있는 문장이며 모든 갈등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장인데 이 부분의 번역이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저 짧은 문장에서 말 쉼표를 넣을지 말지, 엄마라는 표기가 맞는지 어머니라는 표기가 맞는지, 죽었다 또는 돌아가셨다가 맞는 건지.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단어 하나로 주인공의 심리, 엄마와의 심리적 거리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번역이다. 그리고 기존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1:1로 옮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이고 소설 중간중간에도 나오지만 프랑스인이라서 이해할 수 있는 농담이나 은유 등이 나오는데 그런 것들을 잘못 번역하거나 우리가 충분히 그 뉘앙스를 이해하지 못해서 오는 소설에 대한 오해들도 굉장히 많다고 한다. 이방인도 많은 번역본들이 있는데 번역가들마다 스타일이 다른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최근에 교보문고에 가서 또 다른 버전의 이방인도 힐끗 봤는데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하튼 이런 번역의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를테면 어떤 연속극은, 거피한 다디단 흰 팥이 노르께하게 구워진 겉 써 풀에 살짝 싸인 구리만주 같은 가 자못 우물우물 맛있는가 하면, 어떤 연속극은 찐득하니 꿀 같은 팥을 얇은 찹쌀꺼풀로 싼 찹쌀떡 맛인가 짜닥짜닥 맛있어하고, 어떤 연속극은 백항아리에 담긴 눅진한 수수조청을 여자처럼 토실토실한 집게손가락에 듬뿍 감아올려 빨아먹는 맛인가 쪽쪽 맛있어하고 … - 이별의 김포공항중 <지렁이 울음소리>
위의 문장은 박원서 님의 단편 소설집 <이별의 김포공항> 안에 <지렁이 울음소리>라는 단편소설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는 한국문학은 많이 읽지 않고 외국 문학을 많이 읽는데 외국문학만 읽을 때는 번역에 대한 거부감이나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문학을 읽으면서 한 사람을 거쳐 번역된 소설과 작가 의도 그대로 모국어로 전달되는 문학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의 박완서 님의 문장을 어떻게 프랑스어로, 영어로, 일본어로 번역할 것 인가. ’거피한, 다디단, 구리만주, 연속극, 짜닥짜닥, 토실토실……‘ 한국인이라서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한 수 있는 단어들이다.
#뫼르소라는 캐릭터
뫼르소라는 캐릭터는 독특하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아니하지 못한다기보다는 거짓말을 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기도 하고 더 나아가 거짓말의 존재자체를 모르는 것 같다. 그는 진실해 보인다. 하지만 살인을 한다. 하지만 그의 살인은 다른 사람들의 살인과 달라 보인다. 법정에서 변론을 할 땐 그가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어떤 말이라도 변명이라도 하기를 우리는 바랬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그의 거짓말의 존재자체를 모르는 것 같다. 그의 입장에선 왜 자신이 자신의 행동에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지 모른다. 아니 이유 자체를 모른다.
이 책의 해설이나 평론가들의 설명을 보니 뫼르소를 ‘새로운 인간상의 제시‘ ’ 실존주의를 반영하는 캐릭터‘ 등으로 설명하는데 나에게는 어렵게 느껴진다. 그보다는 알베르 카뮈에게는 소설을 통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지만 독자를 이해시키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행동 속에서 나의 숨겨진 모습을 찾아내게 한다는 것이다.
다 읽고도 사실 이 책을 다 이해한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재밌게 봤지만 내가 아직 부족해서 알베르 카뮈가 말하는 것을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는 찝찝함이랄까.
워낙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책이고 문학적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물론 한 번에 이해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고전 소설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면 새롭게 보이고 그땐 더 많은 것을 이해할지도 모르고 또 다른 뫼르소의 면에 공감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