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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미니룩스 줌 자동필름카메라로 찍은 필름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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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미박 2023. 2. 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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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미니룩스 줌으로 찍은 사진



오랜만에 라이카로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찍었다. 카메라에 손을 놓고 있은 지 오래고 지금 필름도 적어도 3달 전에 넣었던 필름 같은데 지난 주말 드디어 다 썼고 (라이카 미니룩스 줌 후기 쓸 때 필름 빼는 법 찍는다고 3장 남은 거 후다닥 써버렸다.) 오늘 인화를 하러 갔다. 출근 전 맡긴다고 갔는데 문이 닫혀있어서 문고리에 돈과 메모와 필름을 걸어두고 왔는데, 혹시나 없어졌으면 어쩌나 했지만 점심시간이 지나고 확인한 메일함에 무사히 사진들이 안착해서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행복했었다.



작년 겨울 출장으로 들린 호텔에서 찍은 사진. 급하게 구한 호텔은 밖은 멀쩡했는데 내부가 약간 미국 고속도로 중간에 으슥한 곳에 있는 모텔 같이 허름했는데 그 나름대로 느낌이 있어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방음이 너무 안돼서 옆방에 기침하는 소리와 통화하는 소리가 다 들렸다..



문화역 서울 284에서 찍은 사진. 문화역 서울은 갈 때마다 높은 수준의 전시를 제공해서 항상 기대가 된다.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멀티탭이 빨간 카펫 위로 튀어나와 있는 게 이질감이 들면서 독특해 보여서 찍었다. 나는 저런 일상적이면서 이질감 있어 보이는 대상을 좋아한다.




호텔방 아침에 들어오던 빛들. 라이카 미니룩스 줌은 밝고 어두운 대비를 잘 살리는 것 같다. 괜히 라이카가 아니다. 빛이 진득하게 나온다. 전체적으로 밝은 사진을 찍을 때보다 이런 어둠과 빛이 강한 장면에서 라이카 카메라는 빛을 발한다. 나는 필름카메라는 카메라 자체의 능력보다는 필름의 느낌에 따라 사진이 달라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런 사진을 볼 때면 필름카메라 자체의 능력도 꽤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눈이 오고 난 뒤 누군가 눈사람을 만들고 그 위에 산타 모자와 목도리까지 야무지게 해놨다. 나는 이런 장면에서 그 뒤에 숨어있는, 손을 호호불며 눈사람을 만들고 뿌듯하게 탁자위에 올려뒀을 사람을 상상하는게 좋다. 그런 상상력을 불러 일으켜 주는 사진을 사랑한다.




엄청나게 추웠던 밖과 따뜻한 내부가 만나면서 창문에 물기가 잔뜩 서려있었다. 우리는 창문 앞 바에 앉았는데 이 물기가 마치 밖과 안을 다른 세계처럼 나눠주는 뿌연 막 같이 느껴져서 신비로웠다. 저 날이 실내는 유난히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너무 사진 안에서 잘 나온 것 같아서 정말 좋은 사진을 찍었다는 생각이 오랜만에 들었다. 저 날 먹었던 플랫화이트와 고구마 수프의 자체의 맛은 특별하진 않았지만 저 날의 분위기와 합쳐지면서 특별한 기억이 남았다.



김이 서리면 또 그림 그리기는 못참는닼 귀여운 스마일을 그렸다. 따라 웃게 된다. 비하인드로는 스마일을 그리고 조금만 있으면 입과 눈 주위의 물들이 아래로 흘러내려 거의 호러물이 되었었다.... 반전매력이 있었다.




한때 사진을 정말 정말 많이 찍었을 때가 있었다. 그땐 이렇게 필름이 비쌀 때가 아니어서 엄청나게 사고 엄청나게 찍어댔다. 한 달에 두세 번은 항상 사진관을 드나들었고 갈 때마다 2-3 롤씩, 여행이나 갔다 하면 7-8 롤은 기본으로 바리바리 싸들고 사진관을 찾았다. 만약 지금 그렇게 하면 집안이 거덜 났겠지만 그땐 필름 한롤에 2800원-3000원 밖에 하지 않았던 때고 열정이 넘쳤던 때라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 열정이 영원할 줄 알았던 시간이 지나 지금은 필름과 데면데면해졌지만 그래도 필름사진은 내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다. (요즘 필름값을 보면 소박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필름을 맡기면 하루가 행복해진다. 출근 전 늘 타는  출근버스와 다른 버스를 타는 것도 설레고 사진관에 들어가면 무뚝뚝한 표정의 아저씨가 나를 알아봐 주며 슬며시 웃음 짓는 그 표정도 좋고, ‘날씨가 너무 춥죠?’라고 소소하게 던지는 대화의 흐름도 좋고, 내 이름을 인화 봉투에 꾹꾹 눌러 날짜와 함께 써주는 것도 좋고, 사진관을 오는 날이면 늘 들리는 근처 카페의 젊은 사장님의 친근한 눈빛도 좋고 달달한 바닐라 라테도 좋다. 점심시간이 넘어 2시쯤 되면 사진을 보내주시는데, 그 사진을 기다리는 오전 시간과 사진이 도착해서 열어보는 순간, 사진을 하나씩 더듬고 기억하고 웃음 짓는 그 순간도 좋다. 그렇게 모든 순간이 좋다 보면 나의 하루는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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